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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내용

건축가K- 05

by 아마추어 건축가 2014. 6. 13.

#5.

 

최종점검일이었다. 공식전시 및 공모마감일의 5일전에 벌어진 말 그대로 최종리허설(?)같은 성격의 점검일 이었다. 심사하는 교수들도 총 5명중에 4명이나 참석하고 또한 20명 정도의 후배학생들도 모여서 서도간 패널을 자임하면서 토론도 가지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

총 3팀의 각축을 벌이는 그런 공모전으로서는 항상 스케일의 우위를 두는 대준으로서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선배님...이거 우리가 제일 먼저 작품판넬 하고 모형을 가지고 나온 것 아닐까요? 나머지 두 팀은 아직 모습도 안보이지 않습니까?

 

이태봉이 대준에게 넌지시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이거 왜 이렇게 간지럽게 붙어서 귀에 다대고 중얼거리는 거야? 걱정 말라고 다들 우리 규모에 대해서 듣고선 졸았나 보지……. 무조건 이런 공모전에서는 스케일이 압도적이어야 돼...내가 한두 번 하는 줄 알아?

 

대준은 여전히 호기롭게 태봉에게 나름대로의 기를 부어넣는 듯한 발언을 하였다. 그런데 너무나도 목소리가 컸는지 다른 학생들이 듣고선 킥킥거리고 소곤소곤하였다. 대준은 그런가 개의치 않고 오히려 더 큰 액션을 취하였다.

 

우리거의 규모는 땅만 12만평이야~ 건물들의 용적은 25만평이라고... 하하. 완전한 도시계획의 결정판이자 표본이라고...이런 것은 우리 학교의 표준샘플로 채택해서 매번 건축학부 신입생들의 견학필수코스로 만들어야되는거지... 어...어...?

 

대준은 호기롭게 일장연설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무언가에 놀라서 사래를 들기 직전의 모습처럼 말문을 닫았다.

그것은 대준의 연설이 진행되고 있을 즈음에 본 세미나실에 들어서는 또 한 팀의 등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팀은 바로 박동민팀의 등장이었다.

작업판넬 3장과 모형을 감싸고 있는 아크릴박스를 들고선 등장하는 박동민 팀의 모습은 마치 독립투사들처럼 보였다.

그에 반해 대준의 팀은 왠지 모르게 어용단체처럼(?)보이는 것은 왜일까?

 

박동민 팀은 대준 팀과는 달리 조용히 작업 물들을 자신의 진영에 세팅을 하였다.

모든 학생들과 패널로 등장하는 교수들도 마치 무슨 의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정숙했다.

아까의 혼잡하고도 천박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것에 대준은 불길함을 예측했다.

 

이런...제길...뭔가 안 좋은데...

 

대준은 불안감에 살짝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박동민 팀은 드디어 판널을 셋팅한후 모형을 감싸고 있던 반투명 아크릴박스의 뚜껑을 위로 올렸다.

드디어 모형이 공개되자 다들 의아해 하는 표정들과 감탄사를 자아냈다.

 

와...저건 정말 듣던 대로 컨테이너하우스이구나! 그래 포기했다고 생각해주지. 하하

 

대준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퍼지자 동민이 예리한 눈을 치켜뜨면서 쳐다보았다. 찔끔한 대준은 급하게 시선을 돌리고선 자기 팀의 모형으로 다가갔다.

대준은 역시 규모면에서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면서 오늘 교수들과 후배들 앞에서 설명할 것에 대해서 속으로 체크해보았다.

 

세팀중 나머지 한 팀은 오늘참석은 못한다 합니다. 두 팀의 프레젠테이션과 질의응답

그리고 패널로 오신 교수님들과의 토론이 시작하겠습니다.

 

진 행보는 2학년 학생의 사회자의 사회가 끝나고 본격적인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팀은 대준 팀으로써 대준이 그 잘난 폼으로 자신들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역시나 잘난 맛에 사는 그이기에 유창하게 설명을 하였으나 그래도 연신 동민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무난하게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약간의 휴식 시간 후에 박동민팀의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역시 동민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동민은 대준처럼 거창한 설명보다는 자시의 판넬과 모형의 모습에 시선을 집중시키게 하면서 마치 회중을 최면에 걸리게 하듯하는 설명을 하였다. 그것도 매우 베이스 저음으로 말이다.

 

이런... 저자식의 페이스에 다들 말려들고 있는 것 같아!

 

대준은 당황스러운 나머지 프레젠테이션 현장인 강의실 밖에 있던 커피자판기에서 일회용 커피를 뽑아서 가지고 들어왔다. 그때까지도 박동민의 차분한 설명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동민의 설명이 대준에게도 너무나 맞는 이야기로 들리면서 자신의 팀의 거대한 규모의 작품이 보잘것없다는, 허황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아... 속이 뒤집히는구나. 이상하네.

 

동민의 프리젠테이션이 끝나고 교수들의 평가를 들어야 되는 시간이 다가왔다. 대준은 그래도 자신만만하였다. 그때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팀에 멤버인 이 태봉이나 구민호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한 얼굴을 하면서 대준울 쳐다보면서 계속해서 위안(?)을 받고자 했다.

 

아까 저쪽 팀의 프레젠테이션 할 때 교수들의 눈빛이 다르던데요. 오늘 평가를 우리보다 더 잘 받으려나봐요.

 

이태봉이 대준에게 말을 건넸다.

 

이 자식아!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할 거면 여기 있지 말고 꺼져 버려!

 

대준은 자신도 불안하면서 괜한 이태봉에게 화를 냈다. 그 불안감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 이었다.

 

건축학과 수석교수인 김상현 교수의 말부터 시작하였다.

 

오늘 두 팀의 그동안 힘들게 준비한 작품들을 이렇게 보게 되니 참 여러 가지로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의 앞으로의 건축 미래가 이렇게 우리학교 출신들에 의해서 좌우될것이다라고 보아집니다.

 

김 교수의 서두는 의례적인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의 이야기가 끝나자 여러 교수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그래봤자 토론이 아니라 다들 자기 잘났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맛에 사는 것이 교수들이 아니겠는가!(교수님들, 죄송해요)

그 교수들 중에 가장 진보적인 젊은 교수인 박지용 교수의 이야기가 결정적으로 대준을 공격(?)했다.

박지용 교수는 H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최고로 신경 써서 영입을 한 교수인데 그의 학력은 영국 AA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넘어와서 맨체스터대학교 건축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대준 팀의 프로젝트는 너무나도 이시대의 개발지향주의적인 내용이라고 보아집니다. 이래가지고서야 우리나라는 영원한 개발도상국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쉽게 말해 쓰레기에 지나지 않다고 사려 됩니다. 그의 반면에 박동민 팀의 컨테이너 하우스의 콘셉트는 매우 선진적인 것입니다. 큐비즘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온 주제를 가지고 현대의 모던함의 극치인 컨테이너 박스까지 도입을 한 것을 나는 높이 사고 싶습니다.

박지용 교수의 이런 이야기에 다른 교수들도 다들 자기네들도 그렇게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에 대준은 자기 자신의 분노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분출하였고, 자기 팀의 판넬 4장을 발로 차버리면서 난동을 부렸다. 교수들과 거기 참석했던 학생들은 갑자기 그의 그런 행동에 당황스러웠고 그 팀의 이태봉과 구민호는 대준의 난동을 막고 있었다. 다행히 모형은 못 건드리게 하는데 그들은 울면서 위로를 삼았다.

그 때 대준은 박동민의 미소 짓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대준에게 비쳐지는 모습은 악하면서 매우 괴기스러운 미소였다. 자기를 대준은 절대 따라올 수 없다는 메시지를 그 미소로 보내고 있었다.

대준은 소름이 끼쳤고, 더 이상은 그곳에 있지 못해서 교수들에게 대충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나갔다.

이후 삼일동안 밤을 새우면서(밤을 새우는 것은 이태봉과 구민호였다.대준은 팀장이라고 하면서 놀았댜...)다시 판넬을 제작하고 콘셉트도 약간씩 바꿔서 공모전에 제출하였다.

결과는 당연히 세팀중에 1등을 박동민팀으로 되었고 그 이후에 대준은 학교를 졸업하였고, 박동민은 해외 유학을 떠났다는 이야기만 대준은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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