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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발표

by 아마추어 건축가 2009. 5. 31.

“열외인간들 모아 분노의 비주류축제 벌였죠”
올해 한겨레문학상 받은 주원규씨
한겨레
» 올해 한겨레문학상 받은 주원규씨
211 대 1의 경쟁을 뚫고 제14회 한겨레문학상의 주인이 된 주원규(34·사진)씨의 <열외인종 잔혹사>. 예심 단계에서부터 이 작품은 과감한 설정과 흥미로운 인물들, 도발적인 메시지로 하여 주목받았다. 대학 문예창작과로 대표되는 우리 문단의 ‘등단 시스템’ 바깥에서 온 작품일 것이라는 게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추측이었다. 거친 문장과 영화 및 게임의 흔적이 결함으로 지적되었지만, 작가의 역량과 작품의 폭발성을 사장시킬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되었다. 심사위원들조차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하다’며 호기심을 감추지 않았다.

노무현 ‘탄핵정국’ 때 영감
“소설 속 지도자도 결국 희생”
문단 밖에서 독립적 글쓰기

심사위원들의 추측은 들어맞았다. 당선자 주원규씨는 주류 문단 시스템과는 전혀 무관한 자리에서 독립적인 글쓰기를 해 온 이였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다시 신학대에 들어갔으나 양쪽 모두 졸업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총회 산하 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계속해 올 3월 목사 안수를 받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200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지만, 그 전이나 후나 문단과는 거의 아무런 끈도 맺지 않고 홀로 글을 쓰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인터넷을 매개로 한 정치 스릴러 소설 <시스템>을 출간하기도 했다.

“인간관계가 좋지 않아서인지 다른 취미는 없이 책 읽고 영화 보는 걸 즐깁니다. 따로 문학 공부를 한 적은 없고, 책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직접 글을 써 보자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군에서 제대하고 공대에 재학하고 있던 2001년께부터 습작을 했습니다.”

중퇴한 공학도·교회없는 목사
코엑스몰 임시직 체험 등 담아
밀려난 인생군상 ‘현미경 묘사’




<열외인종 잔혹사>는 노숙자와 비정규직 여성, 극우파 노인, 게임 마니아인 청소년 등이 각기 다른 일로 코엑스 몰로 모여들고 그곳에서 양머리탈을 쓴 수수께끼의 무장 집단과 마주쳐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소설이다. 문학평론가 황종연씨의 평론집 제목을 인용하자면 ‘비루한 것(들)의 카니발’이 첨단 도시문명을 상징하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코엑스몰에서는 임시직 전기 설비기사로 일하다가 정리해고된 체험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지배 아래 가혹하게 억눌리고 잔혹하게 퇴출되는 ‘열외 인간’들의 처지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듯 써 보고 싶었습니다.”

<열외인종 잔혹사>는 본심에서 당락을 겨룬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도 문장이 거친 편이었다. 이 작품에 밀려난 나머지 세 작품이 문장의 완성도에서는 훨씬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만큼 이 소설의 문장은 ‘문제적’이었다.

“제 문장이 거칠고 정제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에는 동의합니다. 글을 매우 빨리 쓰는 편이고 일단 완성된 작품에 대해서는 좀처럼 퇴고를 하지 않습니다. 반성할 부분이죠. 심사위원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고치고 다듬을 부분은 다듬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 나름의 문체랄까 스타일을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주원규씨가 자신의 문체를 설명하면서 예로 든 작가는 <제5도살장>의 미국 작가 커트 보니거트였다. 1960년대 블랙유머 소설을 대표하는 보니거트는 국내에도 적잖은 마니아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는 이다. 본격소설과 장르소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타일, 해학적인 문장에 슬픔과 고통을 담는 역설적인 문체, 그리고 이른바 ‘문학적’ 문장과의 거리두기 등에서 주원규씨의 이번 당선작은 아닌 게 아니라 보니거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국내 작가로는 백민석, 김영하, 배수아 등을 좋아한다고.

“소설을 쓰면 마음 속에 품었던 안타까움, 분노, 슬픔 등을 속 시원하게 풀어 놓을 수 있어서 좋아요. 카타르시스랄까 자위행위 같은 짜릿함이 있어요. 물론 문학이란 게 거기서 더 나아가 독자와의 소통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는데 솔직히 아직은 그 지점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씨는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건물로서의 교회에는 거의 출입을 하지 않고 예배 집전도 하지 않는다. 몇몇 뜻 맞는 이들과 함께 헬라어와 히브리어, 희랍어 등으로 된 성경 ‘원전’을 강독하는 게 그의 ‘예배’다.

“<열외인종 잔혹사>는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당했을 때 구상했던 작품입니다. 노통 자신이 비주류이자 크게 보면 ‘열외 인간’ 아니었겠습니까. 이 소설에서는 열외 인간들의 지도자로 떠받들려진 노숙자가 결국 희생되는 것으로 처리되었는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보면서 그 결말이 생각나서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윤원민 인턴기자 ywm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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