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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건축디자인정보수록

주택 뒤집어보기-01

by 아마추어 건축가 2009. 7. 25.

 

 

 

 

 METALLIC
 
건축가
김인철-아르키움/02-214-9851
위치
경기도 양주군 회천읍 봉양리 60
규모
지상 1층 / 방4개
면적
대지376평,건축46평,연48평
외부재료
동판 가공 패널
건축연도
1999년
 
갈현동 교회 'NEWTRIUM'이 시공자의
부도로 더 이상 손을 대지 못하고
4년여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때의 기분은
막막하기만 한 것이었다. 거친현장
그대로인 채 살림을 꾸려왔던 교회가
겨우 기운을 차려 다시 작업을 시작
하려고 의논을 해 왔지만 어려운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해결될 방안을 찾기 어려웠다.
그런대로 구실을 하게 하려면 창과 문이
달려야 했고, 난간을 설치해야 했다.

유창공업의 J사장을 끌어들인 것은 철물공사의
선행이 우선조건이기 때문이었는데 문제는
공사비의 지불이었다. 겨우 숨돌리게 된
교회의 재정은 빈약할 뿐이었고, 영세업에
지나지 않는 유창에 선투자를 부탁하기도
어려웠다. 포천 어딘가에 있다는 목사의
고향땅이 공사비용으로 제공된 것은
어쩔수 없는 해법이었다. 이리저리 궁리
해가며 겨우 교회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게
만들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지만 땅문서가
어찌 처리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땅인지도
모른 채 마무리만 제대로 되기를 바랐다.

졸지에 현장소장이 된 J사장은 꾸역꾸역
자재를 들여왔고, 틈나는 대로 기능공들을
동원해 교회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일이
끝났고, 그 뒤에도 유창공업은 'MESOTRON'
과 '김옥길 기념관'등의 현장작업으로
꾸준히 연결되고 있었다. 올해 여름 J사장이
포천 땅에 집을 짓고 싶다는 뜻을 말하였을 때
그것이 어떤 곳을 의미하는가를 알아내는데는
한참 뜸이 들었다. 현장을 갔을 때, 아! 이런
곳이었구나'라고 알게 되었고, 외진 곳이지만
괜찮은 집을 만들어 도움을 갚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물어물 시작한 작업이 석달 만에 마무리되었다.
인테리어 작업이 아닌 것으로는 가장 짧은
시간에 생각이 완성된 셈이다. 단층의 철골구조
이어서 더 빨리 끝낼 수도 있었지만 설계와
현장작업이 동시에 벌어졌으므로 마감 방법과
재료를 결정하는 과정이 시간을 소모하였다.
철골과 샌드위치 판넬, 유리와 동판,
석고보드와 마루판, 그리고 페인트만으로
집이 되었다. 철공업을 하는 건축주이자
시공자인 주인에게는 익히 다룰 수 있는
재료들이었고, 관련된 공사들은 그 동안
낯익혀 두었던 동료들이 도와주었다.
가볍고 얇고 선으로 느껴지는 공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땅에서 솟아오른 모양이 아니라 땅에
얹혀져 있는 모습을 만들려고 한 것은
그것이 땅을 점령하듯 차지하기보다
빌린 듯 놓여지기를 의도한 것이다.
산자락이 계곡으로 흘러 드는 형국에서
무리한 자리잡기는 결국 또다른 무리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필요한 만큼의
축대를 쌓고 땅 고르기를 한 위에 집을 놓았다.
3.6m의 그리드와 2.4m의 높이로 꾸며진
형강 프레임은 현장에서 자르고 붙여서 세워진
것이다. 공장제작과 현장조립의 기계적인
공정이 아니라 블랙스미스의 손질이었던 셈이었다.

틀 위에 올려진 지붕은 떠있듯 보이게 하고
싶었다. 최소한의 하늘가리개를 틀 위에 들어
올려서 비스듬한 틈 사이로 이웃의 숲과
산봉우리와 구름이 자리잡게 하였다. 폭 1.2m의
기다란 복도는 뒷뜰에서 앞뜰로 나가는 가장
단순한 형식으로 고안된 것이다. 그것에 꿰이듯
방들이 나열되어있고, 그 사이는 벌여져 있다.
작위적인 질서를 갖기보다 알맞은 크기로 있을 곳에
두어져 있도록 하였다. 극적인 연출을 하거나
의도적인 손질을 하기보다 골고루 빛과 바람이
들 수 있도록 조절한 것이다. 주어져 있는 틀 속에서의
자리잡기는 융통성의 구사만으로 충분하였다.

물질의 성격을 드러내지 않으려 그 동안 시도하였던
노출 콘크리트가 무성(無性)화의 작업이었다면
메탈은 무량(無量)화의 가능성을 시험해보려는
것이었다. 무성의 것으로 취급된 콘크리트의
경우일지라도 그것이 갖는 양감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그로 비롯된 공간에 앞서 그 자체가 일차적인
지각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부피가 비중으로 압축된 메탈의 선과 판을
감각으로 이용한다면 소재의 양감을 최소화
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다. 최소의 부재라기
보다 금속성의 질감이 만드는 얇음을 염두에
두었다. 외부는 형강을 노출시키고, 틀의 사이를
동판으로 마감하였다.

문과 창은 형강과 동판에 곧바로 접속되어
일체가 되도록 하였고, 유리의 투명함이
강조되어야 할 곳에는 가능한 한 프레임이
생각되었다. 지붕은 경사진 채 내밀어 지지
않도록 틀 안에서 마무리되었다. 내부의
마감 역시 형강의 칫수 범위 내에서 조절되었다.
샌드위치 패널과 석고보드의 접착만으로
두께를 잡았으므로 실내의 선들은 외부의
선들과 일치하게 되었다.

투명한 사이로 드나드는 빛은 밝음과 맑음을
동시에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공간의 내외가 같은 밝음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굳이 내외를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일체감이
만들어질 것이며, 맑음으로 트여진 구획은
주변의 숲과 바람소리, 물소리 그리고 시간의
흐름까지 하나로 어울리게 되는 또 하나의
장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하였다.

얼마 전 선문대의 장기철교수가 일러준
퇴계의 편지는 그때에 대한 흥미와 함께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글 - 건축가 김인철
사진 - 건축사진가 박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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