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반대 망루의 ‘재림 예수’ | |
최재봉 기자 | |
잠깐독서 /
〈망루〉 2009년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인 주원규(35)의 새 장편 <망루>는 지난해 초의 용산참사를 떠오르게 한다. 주인공인 민우는 대형교회 세명교회의 전도사.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담임목사가 된 조정인의 설교문을 대신 작성해 주며 목사 안수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펀드 매니저로 일하던 정인은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자 급조한 신학박사학위로 설교대에 오른 엉터리 목사다. 조정인이 적극 추진하는 교회 앞 재래시장 재개발과 그에 맞선 세입자들의 투쟁이 소설의 핵심적인 갈등을 이룬다.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신학대학 동기이기도 한 윤서가 세입자들의 투쟁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민우 역시 의도하지 않게 싸움의 한가운데로 밀려들어간다. 재래시장 재개발을 둘러싼 싸움이 긴박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세명교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의문의 글이 소설의 또다른 축을 이룬다. 서기 1세기 열심당원으로 마사다 항전에도 가담했던 벤 야살이 직접 재림 예수를 만났다는 것이 게시물의 내용. 게시물의 필자는 윤서로 확인되는데, 세입자들의 정신적 지도자 구실을 하며 아프거나 다친 이를 치료하는 ‘기적’을 구사하는 잡일꾼 한경태를 그가 재림 예수로 받들면서 역사와 현실의 습합이 이루어진다. 대안 교회 목사이기도 한 작가의 ‘전공’을 살린 소설인데, 재림 예수와 현실 속 고통의 상관관계에 대한 천착이 좀더 깊이 있게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문학의문학·1만1000원.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
지난해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첫 장편소설 <열외인종 잔혹사>를 필두로 사회성 짙은 소설들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는 주원규(35ㆍ사진)씨의 네 번째 장편이다. 기독교 목사로 성전 없는 교회를 꾸리고 있기도 한 주씨의 신학적 고민이 날선 사회비판 의식과 함께 뾰족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설정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용산참사를 뚜렷이 연상시킨다. 또한 무분별한 건물 확장, 목사직 세습 등 일부 대형 교회들의 행태를 절로 떠오르게 한다.
미국에서 방탕하게 살다가 아버지로부터 초대형 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물려받은 조창인은 교회 건물이 노른자위 재개발구역에 속해 있다는 점을 활용, 인근 상가 건물까지 매입해 복합 레저타운을 세우려 한다. 상가 철거에 극력 반대하는 영세 상인들을 이끄는 자는 한때 목회자를 꿈꿨던 철거민 조직의 수장 김윤서. 힘의 우위는 '시장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 하나님의 질서에 부합한다'는 궤변과 함께 권력기관과 결탁해 개발을 밀어붙이는 창인에게 있다. 점점 수세에 몰리는 철거민들의 극한적 선택과 그로 인한 파국은 1년 여 전 우리가 이 땅에서 목도한 바와 흡사하다.
하지만 단지 특정 사건의 재연으로 여긴다면 이 작품의 종교소설적 면모를 놓치기 쉽다. 윤서는 철거민들 중 2,000년 전 예수처럼 비범한 치유 능력을 보여주는 보일러 수리공 한경태를 재림예수로 여긴다. 경태는 그러나 위기상황을 뒤집을 초인적 능력을 보여주길 바라는 윤서의 기대와 달리 과격한 투쟁에 거듭 반대한다. 그의 소신은 윤서가 상가 꼭대기에 망루를 세울 때도, 화염에 휩싸인 망루에서 윤서에게 살해될 때도 변함없다.
재림예수를 향한 윤서의 갈망과 좌절은 신앙의 허울을 쓴 탐욕에 눈먼 기성 신학의 재림예수는 물론, 하늘이 아닌 이 땅에서 비참한 현실을 구원해줄 신성(神性)을 찾으려는 민중신학적 입장 또한 훼손된 인간 존엄을 회복하는 데 역부족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모든 면에서 대척에 선 윤서와 창인 사이에 정민우가 있다. 윤서의 옛 친구이자 교회 전도사인 그는 창인의 설교문을 대필하는 측근 노릇을 하며 조만간 받게 될 목사 안수에 연연하는 인물. 어릴 적부터 주입된 신앙과 새롭게 눈뜬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는 저마다의 이기심에 의해 왜곡된 재림예수를 모두 부정하기로 결심한다. 진정한 예수의 재림은 바로 인간의 몫이라는 깨달음에서다. "신이 대신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하기 위해 인간은 오랜 시간 누군가 그 악역을 감당해주기만을 갈망해 왔다. 하지만 그 헛된 기다림과 갈망의 우상을 거부한 누군가들이 있다. 나는 지금 그 저주의 악역을 감당하고야 만 그 누군가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317쪽)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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