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대준이 눈을 뜬 시간은 새벽 4시30분이었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고 목이 너무나도 타들어가듯이 마른 나머지 더 이상의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여기가...어디지...어이구 머리야~
대준은 대충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색한 분위기의 내부 인테리어. 어줍잖은 원형형태의 물침대. 천정모양도 원형으로 침대의 형태에 맞춰서 시대의 트렌드를 대충은 따라가려다가 만듯한 그런것이었다.
누가 이따위로 디자인을 한거야...
보나마나한 그만저만한 모텔이었다. 그렇게 파악을 하고나자 어제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대준은 되지도 않는 나이트가운 - 누가 입혀주었을지 모르는 가운이다 - 을 벗어버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매우 찬물로 샤워를 하면서 대준은 어제의 철규하고의 대화를 되살려보았다.
동문회이야기, 요즘 잘나가는 놈들(?)의 이야기, 빌라지으면서 돈 좀 많이 벌었다는 동창 이야기, 그리고 어제 떨어진 현상설계의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등등... 여러 가지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는 박동민의 2년전 귀국과 더불어 국내에서 사무소개설하고 본격적으로 설계를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런... 제길...
대준은 내자신이 왜이렇게 박동민이 한테 피해의식(?)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박동민의 이야기만 들어도 속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대준은 대충 수건으로 몸을 닦고나서 욕실밖으로 나왔다. 원형침대 옆의 조그마한 티테이블 위에는 자기가 제일 아끼는 몽블랑 펜이 몇가지 서류위에 조심스럽게 놓여있다. 누군가가 정리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 정도의 정리이다. 티테이블 위에는 벽에 부척되어있는 옷걸이에 매우 단정하게 독일제 감색벨벳의 상의와 또한 같은 색깔의 바지가 주름이 질서없이 마구 접히지 않게 잘 접어서 바지걸이에 매여있다.
대준은 그런것을 보면서 어제 모텔을 누구와 같이 들어왔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분명히 철규와 함께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박동민이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 독한 발렌타인 21년산을 스트레이트로 몇잔을 정말로 연거푸 마시고나서 철규의 부축을 받고선 바를 나온것까지만 어슴푸레 기억이 나는것 같았다.
대준은 생각을 해보고자 양미간을 찌푸리면서까지 - 원래 이렇게까지 생각을 안한다. 평소에는 - 노력을 하였으나 더 이상은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대준은 그냥 기억을 되살리는 것을 포기하고 - 아무렴 어떠냐! 어떻게, 누구의 도움으로 모텔에 들어왔던간에 말이다! - 티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서류 몇 장을 집어 들었다.
뭐지...이것들은...? 어제 내가 차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내린것이 없는데...
서류 중 첫 장 에는 다음과 같은 주소가 적혀있었다.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OOO-O번지
그리고 그 지번에 맞는 토지이용계획확인원, 토지대장, 등기부등본, 건축물대장등의 토지및 건물관련서류등이 뒤를 잇고 있었다.
대준은 그런 서류들을 보면서 이런 준비를 할 사람은 철규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에 대준의 아르마니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형~ 일어났어요?
그래... 너는 어디냐?
철규였다. 대준은 뻔한 철규의 행방을 물어보았다. 분명히 철규는 정신을 잃은 대준을 모텔방으로 데려다놓고 옷가지들을 잘 정리해놓고 서류들도 티테이블 에다가 잘 놓고선 자신은 유유히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만진 다음 자신의 집으로 대리운전을 통해서 귀가했을 것이다.
대준은 그에 반해 너저분한 모습으로 폼을 구겼을것이 당연지사였다.
이것들은 뭐냐?
음... 형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설계의뢰에요
호오...
대준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직감적으로 강남 도곡동의 지번과 얼핏봐도 상당한 면적의 대지면적 등을 보고서 그냥 간단하게 넘길만한 조그마한 일거리는 아니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어디 그런가? 대준은 어줍잖은 자신의 가치를 포장해야 한다는 생각에 속마음과는 다른 말을 꺼냈다.
철규 네가 하면 되잖아? 왜 나에게 이것을 던져주냐? 동정하는 거냐? 내가 요새 조금 힘들다고 괜히 엄살 부린것 가지고?
하하... 제가 그럴수가 있나요? 그런것이 아니고 사실 어제 만나뵙자고한것도 그 설계건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하도 형이 동민이형 이야기에 너무 흥분하셔서 이야기도 못 꺼냈던것 이지요
음 그랬군...그런데 왜 나에게?
그것은 나도 어쩔수 없는 거에요. 그 건축주가 직접 나보고 형에게 의뢰를 부탁해달라고 했어요. 저도 처음엔 직접 말씀하시라고 했는데, 꼭 전해서 이야기해달라고 해서요...
하하하. 아직 나의 인기가 그만큼 있다는 이야기겠지... 하하 농담이야
대준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만큼 감정의 변화도 심했고 단순한 구석이 있는 대준이었기에 여러 가지 설계일들을 놓친적도 많았지만 의외로 그런 성격들이 장점으로 다가온적도 더러 있었다.
대준은 대충 철규의 전달사항을 듣는중 마는둥 하고 이내 건축주연락처가 있으니 직접 연락해보겠노라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내 나중에 술한잔 철규에게 사주겠다는 형식적인 인사로 답례하고 말이다.
그리고나서 대준은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매번 기분좋게 하는 대준의 아르마니폰. 사실 단지 기분상 좋은것, 그것뿐이었다.
여보세요!
목소리만 김태희인 여직원 미스송 ... 웬지 짜증나는 대준은 약간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유실장 좀 빨리 바꿔줘봐.
잠시 몇초간이 흐르고나서 전화를 바꿔받는 유실장.
예. 소장님.
강남구 도곡동 OOO-O번지인데 한번 땅의 컨디션 좀 알아봐봐~
예. 그러겠습니다. 그리고 소장님...
잠시 말을 머뭇거리는 유실장. 특유의 뜸을 들이는 유실장의 버릇이었다. 대준은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버릇이지만, 그렇다고 남의 버릇을 뭐라 하면서 뜯어고칠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내버려둔 상태이다.
왜? 무슨 일있어?
음... 소장님... 사무실 월세 및 관리비가 좀...
하하! 알았어, 알았어. 노인네게에게 금방 처리해준다고 전해줘~ 그리고 그런것은
미스송이 신경써야지 그걸 왜 유실장이 궁상맞게 그러고 있어!
대준은 대충 큰소리로 얼버무리고 도곡동건은 매우 큰것이라고 약간의 허풍까지 떤후에 유실장과의 통화를 끊었다. 대준은 매우 창피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이 처음겪는 일은 아니기에 어느정도는 참을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일이 잘 안돌아간다고 생각하면서 더욱 철규에게서 들어온 설계의뢰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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