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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및 동양고전

學而第一(학이제일) 7篇(편) : ~ 언이유신(言而有信)

by 아마추어 건축가 2024. 8. 29.

이번 포스팅에서는 논어 중 학이제일 7편에 대해서 개인적인 의견 덧붙여 올려보고자 한다~

 

출처 - subKorea 닷컴

 

여기에 후반부분에 해석해서 달아놓은 글은 절대적으로 본인의 소견임을 거듭 밝힌다.

 

學而第一(학이제일) 7篇(편)

 

子夏曰賢賢(자하왈현현)

자하가 말하시기를, 어진 사람을 어질게 여기되

 

易色(역색)

미색을 좋아하듯하며

 

事父母(사부모)

부모를 섬기되

 

能竭其力(능갈기력)

그 힘을 다하며

 

事君(사군)

임금을 섬기되

 

能致其身(능치기신)

그 몸을 다하며

 

與朋友交(여붕우교)

친구와 사귀되

 

言而有信(언이유신)

말에 믿음이 있으면

 

雖曰未學(수왈미학)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吾必謂之學矣(오필위지학의)

나는 반드시 배웠다고 말하리라

 

 

학이제일 7편의 본문에 들어서면 첫구절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子夏曰賢賢(자하왈현현)

자하가 말하시기를, 어진 사람을 어질게 여기되

 

어진사람을 어질게 여긴다는 의미에서 나는 유유상종이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렸다.  인성이 어질다고 하는 사람을 어질게 여길수 있으려면 여기고자 하는 사람 자체가 어질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미이지 않겠는가?

어질지 못하는 사람의 눈에는 어진 사람을 발견할 수도 없을것이며 오히려 그러한 어진 사람들을 자신의 잣대로 비판하고 나설것이기 때문이다.

 

易色(역색)

미색을 좋아하듯하며

 

두번째로 나오는 구절이 역색이라고 하는데 처음에 나는 전혀 이해할수 없을 해석이었다.  미색을 좋아하듯하며 라는 의미가 충분히 전달이 되지 않았다. 미색이라는 것의 뜻이 자세하게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인터넷등을 검색해보니 미색이라는 말은 좋게 표현한 말이고 여색이라는 의미가 강하다고 하면서 그 미색을 좋아하듯한다는 의미는 앞의 어진사람을 어질게 대하고자 하는 마음을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꾸듯이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라는 것을 발견해냈다.

 

事父母(사부모) 부모를 섬기되   能竭其力(능갈기력) 그 힘을 다하며

 

그 다음으로 부모를 섬기려면 섬기고자 하는 자식의 모든 힘을 다해서 섬기라고 한다. 진정한 효도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데 현대사회에서의 효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여겨보게 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의 여러가지 뉴스들에 의하면 부모들의 힘에 의한 자식들의 학대, 더 나아가서는 죽이게 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여기에서의 힘을 다해서 섬기라는 의미는 반대로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도 그 힘을 다해서 양육의 의미를 가지라는 뜻일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부모에게 있어 자식이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닌 독립적인 인격체이지 않은가!

 

事君(사군) 임금을 섬기되   能致其身(능치기신) 그 몸을 다하며

 

그 다음으로 나오는 문장이 임금을 섬기려면 섬기고자 하는 자의 몸을 다하라는 것이 나온다. 충성을 다하라는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충성이라는 뜻은 그 몸만 다해서 움직여서 되는 것이 아니다. 몸이 움직이고자 한다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자신의 생각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몸을 다해 임금을 섬겨야 한다는 의미는 현대에 와서는 국민을을 섬기고자 하는 뜻으로 바꿔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자신의 몸을 다해서 위정자들이 국민들의 사항들을 섬길수 있다면 국민들도 동일하게 몸을 다해서 섬기고 추종하면 상호상생을 이루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與朋友交(여붕우교) 친구와 사귀되   言而有信(언이유신) 말에 믿음이 있으면

 

이젠 친구와의 교제를 하고자 하면 말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되어있다. 말의 믿음이라는 것은 진실이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진정성있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뜻일것이다. 진실과 진정성이 담겨있는 말의 반대는 거짓말이며 헛된 실없는 말이다. 자신에게 불리할 사항이면 어떠한 부분에 있어서 그 모든 내용을 통째로 숨기서나 부인하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포장해서 내세우고, 불리한 것은 은폐를 한다. 이러한 부분의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해서 믿음이 절대로 생기지 않으며 친구라는 관계적인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꼭 친구의 관계라는 것을 벗어나서 크게 보자면 모든 인간의 관계에서는 말에 믿음이 없는 한 이 사회에서 진정으로 존재해 나가기는 힘들 것이다.

 

雖曰未學(수왈미학)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吾必謂之學矣(오필위지학의)

나는 반드시 배웠다고 말하리라

 

이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문장은 앞의 이러한 자세를 몸에 가지고 있다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배웠다고 말하겠다라는 것이다.

지식적인 부분이나 좋은 학벌이나, 매우 높은 직위, 전문가 직업군들이 꼭 배움이 많다고 볼수 없다. 그것은 진정으로 배웠다고 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한 약간의 기술이라고 할수 있는 낮은 부분이라는 뜻이다.

진정으로의 배웠다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어진사람을 어질게 여기고자 하고, 부모에게는 힘을 다해 섦기고, 임금에게는 몸을 다해 섬기고, 친구를 사귀고자 할때에는 말에 믿음이 있는 자세의 사람이라면 누구보다도 더 많은 배움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작성자 : 주원태

 

주원태

부천대학교 건축과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홍익대학원 도시계획과 석사과정에서 수학을 하였다. 서인건축, 삼우설계등에서 실무를 거치고 건축시공이나 인테리어 설계까지 경험하였다. 부동산개발도 접근을 함으로써 28년차 건축가 활동으로 국한된 건축이 아니라 다방면에 관심을 가졌고 2020년부터는 동생 소설가 주원규와 함께 문화 및 컨텐츠, 건축프로젝트그룹인 스토리원(Story one)을 설립하고 지금까지 건축, 인테리어와 더불어 소설, 영화, 드라마 및 IP분야까지 폭넓게 활동해오고 있다. 저서로는 [수인의 건축] [집과 연필, 비례이거나 반비례거나]등이 있다.
설계 및 시공, 부동산개발 문의 bstudio012@gmail.net 이나 010-9162-6135(문자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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